여름방학 날 받는 하얀 압박
섭씨 40도를 훌쩍 뛰어넘은 2026년의 여름도 이젠 정점을 찍고 내려오나봅니다. 에어컨이 없는 곳을 벗어나면 쉴새없이 존재감을 보여준 그 땡볕도 매서움이 덜합니다. 이제는 더위에 익숙하고 함께 지낼 수 있는 지혜도 터득했을 법한데, 밖으로 나가질 못하게 만드는 무더위에는 갈수록 적대감이 커져갑니다.
어린 초등학생시절의 여름은 달랐습니다. 방학을 시작하기도 전에 매미는 벌써부터 고음을 번갈아 내면서 서라운드 음향으로 학교의 나무에서 여름을 알립니다. 과수원을 하는 친구의 집에는 복숭아가 기다립니다. 집앞 맑은 냇물이 흐르는 친척의 시골도 빼놓을 수 없는 여름방학 코스입니다. 놀고 또 놀아도 지지않는 여름의 태양은 야간 조명등 처럼 늦은 시각까지 비춰줍니다.
이런 여름을 즐기기 위해선 전제조건이 있었습니다. 방학시작 전날에 받는 성적표는 늘 눈엣가시처럼 어린 저를 괴롭힙니다. '수,우,미,양,가'로 과목별로 평가를 한 1학기의 성적이 선생님의 그 필체 그대로 적혀있습니다. 당시에는 성적표가 아니라 통지표라고 적힌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얀 통지표의 표지를 넘기자마자 과목별 성적이 펼쳐집니다. 공부를 잘 못해도 부모님이 그렇게 나무란 적도 없었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성적이 곧 자존심이라는 생각은 강했습니다. '수'가 많이 받은 여름방학에는 통지표의 하얀 여백에 바다도 그려지고, 냇물도 흐르고, 수박과 참외도 선명합니다. 그 반대의 성적을 받은 여름에는 방학을 시작해도 며칠간은 전혀 놀지도 못하고 혼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겨울은 달랐습니다. 방학전날 받은 통지표의 성적이 좋지 않아도 큰 압박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여름에는 놀 곳이 많아서 늘 신납니다. 하지만 겨울에는 방학이 돼도 집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신나게 놀 수 있는 여름을 더욱 신나게 놀려면 1학기의 성적이 여름방학의 즐거움을 결정짓는 기준으로 어느새 자리를 잡았던 모양입니다.
그냥 놀아도 될 나이에, 혼자서 무거운 잣대의 옷을 걸쳐 입었던 것입니다. 이 옷이 평생동안 입고 있을 줄은 그때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좋은 결과를 내야하는 일에는 늘 의욕보다는 걱정과 불안감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제대로 집중해야 성과를 낼 수 있었는데도 그러질 못했습니다. 집중에 쏟을 에너지는 불안감에 일찌감치 뺏겨버렸습니다. 결과는 갈수록 좋지 않았고, 불안감이 늘 앞장섰습니다.
이 불안감의 정체를 찾기 위해서 눈을 감고 살펴봤습니다. 초등학생때의 여름방학속에 이 불안감이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익숙했던 불안감이 그 속에 조용히 있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이번 여름의 끝자락에는 이 불안감을 떠나보내려 합니다. 초등학생의 그 싱그러운 여름방학으로 되돌아가서 어린 저의 귀에 속삭입니다.
'놀아도 돼, 그냥 놀아도 돼.'
그리고 성적표에 찍힌 맨 꼴찌의 '가'에게도 이름을 길게 붙여줍니다.
'놀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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