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맨발

맨발걷기

 찰팍찰팍, 철퍽철퍽. 장맛비가 내리는 맨땅의 운동장은 패여있는 깊이를 알 수 있게끔 맨발로 지나가면 소리가 다릅니다. 

우산을 쓴 채 빗속으로 운동장을 걷는 재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런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큰 운동장을 혼자서 즐기는 특권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고, 또 하나는 평소 흙의 촉감만 느끼고 걷던 그 코스에 물방울이 주는 느낌까지 더해져 투 트랙을 동시에 걷는 기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일년 중 맨발로 빗속을 누빌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질 않습니다. 겨울은 물론이지만, 초봄과 늦가을에는 비가 오면 운동장에 냉기가 느껴져 맨발 걷기는 좀처럼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여름에 내리는 소낙비는 쉽게 걷는 길을 내주진 않습니다. 금방 그치는 소낙비는 이내 열기 가득한 한여름의 공기에 자리를 양보하고 떠나버리고 맙니다. 습하고 뜨거운 공기를 마셔가면서 걸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올해 첫 장맛비가 내리던 날 맨발걷기를 나갔습니다. 일년 중 자주 느낄 수 없는 그 촉감의 중독성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걷다 보면 장마기간의 첫 비가 주는 즐거움은 고마움으로 다가옵니다. 장마가 한창일 때의 운동장은 찰흙처럼 변합니다. 질퍽질퍽이는 그 느낌은 첫 장맛비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장마의 짧은 첫 비를 매년 기다립니다. 오래 느낄 수는 없는 즐거움이지만 짧게 왔다 가는 그 첫비는 6월의 선물처럼 반갑습니다.

그러다 장마가 한참동안 떠나질 않고 비를 뿌려대면, 빗속 맨발걷기도 지칩니다. 햇볕속에서 뽀송뽀송한 운동장의 흙을 밟던 그 느낌이 그리워집니다. 이것도 잠시입니다. 한여름의 태양아래서 몇번을 걷다보면 차라리 장마가 낫다는 생각이 파고듭니다.  

사계절은 늘 왔다가 가버리니깐 생길 수가 있습니다. 여름만 존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추운날만 365일을 채우질 않고, 봄과 가을이라는 완충재까지 끼워넣어서 아름다운 네 계절을 빚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계절은 교훈을 줍니다. 계절이라는 하나의 자리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서대로 번갈아 앉습니다. 매화가 피면 겨울이 보따리를 싸고, 초록의 나뭇잎이 짙게 변하면 여름이 이사를 갑니다. 이렇게 사계절은 자리를 비워줘야 다음 계절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365일 동안 가르쳐 줍니다. 초등학생이 배우는 공중도덕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압니다. 이 때가 지나가면 다음 때가 어떤 모습을 나타는지를. 경험으로 때를 아니깐 모르는 사람들한테선 어른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터널을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때를 모르는 이도 있습니다. 이 긴 터널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터널이 끝나는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걸으면 어둡고 칙칙한 터널이라도 고통이 줄어듭니다. 때를 알고 모르고는 이렇게 삶에도 큰 차이를 줍니다. 

오늘 걷고 있는 이 터널이 끝이 없을 만큼 길게만 느껴지시나요. 그냥 끝까지 그냥 걸으시면 됩니다. 끝은 반드시 나타나고 밝음이 그 끝에 마중나와 있습니다. 어른들이 늘 차분하고 고요한 표정을 짓는 이유는 끝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마가 끝나면 햇빛이 마중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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