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의 99단
사는 곳이 아파트 저층이라서 뒷 베란다에서는 곧은 소나무의 모습을 늘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계절따라 큰 변화는 없는 소나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이 소나무에 늦은 봄날 비둘기 한 쌍이 자주 들락거리더니, 이내 부지런히 둥지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주운 가지 물어 나르더니 부리로 툭툭 둥지의 틀을 잡아내고 곧장 집을 완성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뿐만이 아닙니다. 이 소나무는 10여년 전부터 비둘기들이 집을 짓고 새끼를 품고 여름과 함께 역동적인 생활을 꾸려나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몇년전부터는 비둘기들이 둥지 트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불편한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비둘기들이 발길을 끊은 이유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다시 비둘기가 다시 찾아와서 반갑다며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처음 둥지를 튼 비둘기의 자손들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비둘기들인지도 궁금해 하며 다시 관찰모드로 들어가봤습니다. 이번에는 둥지를 틀자마자 며칠 안돼서 몇개의 알을 낳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고는 부지런히 알을 품더니 며칠전에는 드디어 새끼 비둘기들이 엉성한 깃털을 갖춘 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둥지로 만든 나뭇가지와 새끼들의 색깔이 엇비슷해 몇마리인지는 구분을 할 수 없지만 2마리 이상이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세상에 나온지 얼마되지도 않은 비둘기 새끼이지만 생존본능은 신기할만큼 대단해 보였습니다. 까치가 소나무에 올라타면 새끼들은 어미를 기다리며 쳐들은 고개를 얼른 낮게 감춥니다. 까치가 떠나고나서야 먹이를 물고오는 어미를 기다리며 다시 고개를 쳐듭니다.
어디서 배우지도 않은 집짓기를 하지않나,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도 위협적인 새들이 나타나면 몸을 낮추며 자연속에서 살아갑니다. 생존 본능은 인간보다 짐승들에게서 훨씬 빠르게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궁금해집니다. 생존본능이 비둘기 몸속 어디에 저장된것인지, 또 다른 본능은 어떻게 프로그래밍되어있는지. 본능은 가장 중요한 능력입니다. 살아가야하니깐요.
짐승들에게는 좌절이라는 단어는 몸속에 입력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살아가는 게 목적일뿐, 그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날개가 부러져도 부리를 다쳐도 먹이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살아가야하니깐요.
좌절은 인간의 마음속에서만 싹을 틔웁니다. 그리고 무섭게 자라면서 살아가는 본능에 잡초처럼 덮칩니다. 비둘기는 그냥 살아갑니다. 그것이 비둘기가 자연속에서 본능적으로 깨달은 삶의 셈법인 99단입니다.
바람에 둥지가 나무에서 떨어지지않고, 큰 새의 공격을 받지않고 무럭무럭 자라서 새끼 비둘기가 내년에는 어미가 되어서 다시 둥지를 틀길 기다립니다. 연속성 또한 자연의 본능일테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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