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상자에서 쏟아집니다. 짙은 푸른 밤 하늘에 떠있던 노란 별들이, 그 아래의 마을과 함께 1000피스의 퍼즐로 분해된 순간입니다. 세계적 명작이 고난과 인내의 시간을 알리며 방바닥에 어지럽게 놓여져 있습니다. 유달리 퍼즐 맞추기를 좋아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걸 언제 다 맞추지'라며 바라보는 주변인의 시선은 한참 지나면 '저걸 언제 다 맞췄지'라며 놀라움으로 바뀝니다. 틈만 나면 퍼즐에 매달리고 그의 방 한구석은 퍼즐이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조각, 한조각 비슷한 색깔로 분류를 하고 난 뒤 마치 작가의 손이 움직이는 것처럼 집중하면서 작품을 완성해 갑니다. 마을이 나타나고 밤하늘이 보이고, 노란 별도 모습을 드러내면서 열흘정도 지나면 '별이 빛나는 밤'이 방바닥에 다시 빛납니다. 한 작품을 쏟고 맞추기를 몇 차례 반복하면 다른 작품이 등장합니다. 이 분의 취미를 알고있는 지인들은 선물을 고를때 너무나도 쉽습니다. 복잡한 퍼즐을 골라서 전달하면 무척이나 좋아하는 표정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퍼즐 맞추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의문의 퍼즐'이 생겨났습니다. 저게 재미있을까. 따분하고 복잡하게만 보이는데 체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닌지. 여러번 완성해서 손에 익은 퍼즐은 상자속에 다시 넣어 방 한구석에 보관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자의 높이도 올라만 갑니다. 예전 몇차례 손댔던 퍼즐들이 한번씩 다시 방바닥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특징이 있습니다. 색깔이 비슷해서 맞추기 힘든 작품들입니다. 의문의 퍼즐 하나는 그의 재선택 룰에서 맞출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 100피스짜리도 힘들어하는 그의 표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1000피스쯤이야'라는 눈빛으로 퍼즐을 맞춥니다. 이제는 간혹 2000피스짜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반복된 취미가 그에게 자신감을 가져다 준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의문 퍼즐조각은 완성 순간에서 찾았습니다...
집 근처 자주 들르는 가게의 옆 빈공간은 고양이들의 아지트입니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갖다놓는 먹이덕에 한끼를 해결하려는 고양이들이 많습니다. 아지트에는 늘 이곳을 지키고 있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흰털에 연한 갈색의 무늬가 얼룩져 있는 녀석입니다. 가게 주인은 이 고양이가 아지트에 자리잡은 지는 10년은 훨씬 지났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녀석의 모습을 담아갑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아는지, 녀석은 사진 찍을때 도망가지도 않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답합니다. "귀엽다"며 쓰다듬어주면 편안한 자세로 사람의 손길을 그대로 느끼는 듯한 표정입니다. 먹이통과 물통은 늘 가득합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니깐 녀석의 움직임은 느립니다. 뛰어다니는 걸 본적이 없습니다. 항상 느릿느릿하게 어슬렁 걸어다닙니다. 사람이 산책하듯이. 먹이통에는 한번씩 길고양이로 보이는 녀석들도 나타나서 허기진 배를 채웁니다. 다른 고양이가 자신의 먹이통을 건드려도 녀석은 보고만 있지, 길고양이와 싸우거나 쫓아낼려는 '먹이통 사수 작전'은 절대 펼치지 않습니다. 어느날 다른 고양이가 먹이통으로 다가오자 누워있던 녀석이 움직였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심술이 나서 다가온 고양이를 쫓아내려고 그러는가 싶었지만, 이해 못할 행동을 보입니다. 먹이통으로 가서 함께 먹는듯한 시늉을 하는 것입니다. 사료를 먹지는 않고 머리를 먹이통으로 숙이며 있었습니다. 사료를 먹으러 온 고양이는 상태가 좋질 않았습니다. 눈에는 이물질이 잔뜩 끼여있었고, 입가에는 끈적한 침이 끊기지않고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몸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한눈에도 알 수 있는 상태입니다. 사료를 빨리 먹지도 못하고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이 장면을 보고선 아름다운 해석을 합니다. "고양이는 먹이를 먹을때 다른 고양이가 같이 먹으면 빨리 먹으려는 습성이 있는데, 아픈 고양이가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깐 '녀석'...
때가 돼서 보따리를 싸고 떠날 채비를 하는 여름, 때가 돼서 보따리를 들고 찾아올 채비를 하는 가을이 만나는 요즘입니다. 끝나지 않을 듯한 무더위도 계절의 룰에 따라 내년을 약속하며 물러나는 모습에 자연의 매너를 느끼게 합니다. 아직 완전하게 떠나지 못한 더위에 가을은 이미 찾아와 있습니다. 등산로에 들어가는 오솔길에는 도토리나무가 길 따라 심어져 청솔모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고, 먹으려다 놓친 도토리는 오솔길 위에 떨어져 있었나봅니다. 이 오솔길에 아주머니 두분이 등산복 차림으로 손에는 검은 봉다리를 들고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담고 있었습니다. 더위가 남아있는 탓에 줍는 것이 가을의 도토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뭘 줍고 계세요"라며 앞서 오던 한 분에게 여쭸더니 "도토리입니다". 어느새 윤기가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도토리가 가을의 도착을 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쳐지나가는 대화를 하는 동안 먼저 걸어오시던 아주머니는 눈에 띄는 도토리를 모두 담진않는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뒤에 따라오시던 분의 몫을 남겨둔채 떨어져있던 도토리를 띄엄띄엄 주워서 자신의 봉다리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뒤따라 오던 분도 허리를 숙이며 도토리를 주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좁은 오솔길이다 보니 마주 올 등산객이 지나갈 통로도 마련하기 위해선 두분이 옆으로 나란히 도토리를 줍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신 건지, 아니면 대화없이 조용히 각자가 가을 맞이를 하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는지 거리를 꽤 두고 도토리 줍기에 한창이었습니다. 앞선 분의 도토리 남겨두며 걸어가는 배려와 뒤따른 분의 앞선 분에 대한 믿음이 오솔길에서 공생의 걸음걸이를 담아냈습니다. 배려와 믿음이 없었다면 나란히 걷거나 앞서서 걸으며 많은 도토리를 손에 넣으려고 걸음을 재촉했을 겁니다. 그런 경쟁의 걸음에도 오솔길이 끝날때에는 봉다리에 든 도토리 갯수는 비슷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두 분의 걸음에는 찾아온 가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유의 ...
"자다가 너무 답답해서 새벽에 깼는데, 더 이상 잠은 오질 않아서 학교 운동장에서 뛰고 또 뛰었어. 아무도 없길래 고함까지 지르면서 숨 차는지도 모르게 달렸더니 그나마 마음이 좀 가라앉더라."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기의 근황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모든 곳에서 벽을 느끼고 있는 심정을 친구는 계속 풀어갔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들어줬지만, 친구는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마음속을 계속 끄집어냈습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이야기는 잠잠해졌습니다. 고함을 지르며 운동장을 달리고 달린다고 친구의 상황은 바뀌질 않습니다. 그런데 왜 복잡한 마음이 한결 나아질 수 있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졌습니다. 실제 소리를 지르거나 운동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똑같은 동네의 뒷산을 등산하는데도 어떤 날은 코스가 너무 쉽게 느껴지고, 또 어떤 날은 지리산을 오르는 마냥 힘들기만 한 경우도 있습니다. 뒷산은 변함이 없는데 자신의 컨디션이 그 뒷산을 평소의 뒷산으로 만들기도 하고, 높고 높은 지리산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혹시 컨디션이 안좋을땐 속으로 이런 생각까지 합니다. '뒷산의 높이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면.' 뒷산이 높은 것도 낮은 것도 뒷산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 산을 오르는 사람의 인식이 매일매일 높이를 다르게 만들 뿐입니다. 그리고 산이 높게 보이는 날은 집착을 내려놓으면 산은 낮아집니다. 꼭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집착이 산을 더욱 높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번씩은 목표보다 낮게 올라가도 만족하는 패턴을 만들면, 목표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을 더욱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힘들때는 '힘들구나'라며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면 그뿐입니다. 자신의 상황을 비난하고 자신의 능력을 원망하며 힘듦의 몸집을 키울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꽃길만 걸으면 꽃길의 고...
아버지들이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는 미래소설의 장면이 현실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장르는 '호러(horror)'입니다.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자리를 꿰찬다는 소설같은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능력있는 후임때문에 자리를 뺏길까봐 걱정하는 모습은 이젠 고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버지의 일자리를 노리는 것은 감정조차 없는 AI입니다. 얼마전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30년 넘게 다녔던 회사에서 보따리를 싸고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사연. 그분의 퇴사 스토리는 더이상 그분만의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그분이 다녔던 그 회사는 재정상태가 갈수록 악화되자 특정업무를 AI로 대체하기로 하고 직원을 줄였습니다. 직접적인 권고사직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타 부서에서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들은 그는 더이상 회사에 머무를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새로 일을 배우는 것도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고, 넉넉하지는 않아도 생계를 꾸려갈 수는 있을 정도의 돈은 모아 놓았기 때문에 사표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들은 가시방석위에 앉아 있습니다. 당장 회사에서 쫓겨나면 생계는 물론, 재취업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불안한 출근을 합니다. 더구나 AI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아버지들의 젊은 시절에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아들과 딸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려고 나섰지만 몇년간 고배만 마시고, 나이는 어느덧 서른에 다달았다는 주변 이야기도 흔합니다. 자격증 더 따서 취업하려고 매달리지만 초조하게 흐르는 시간때문에 집중도 못하고 방황을 한다는 아들부터, 좋은 직장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딸까지. 집집마다 한숨의 길이는 갈수록 짙게 들리고 있습니다. 이미 자동화가 진행된 기업들은 이젠 사람들에게 취업의 문을 더욱 닫아버리고 있습니다. 로봇,AI, 빅테이터로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기업의 가치는 정말 맞긴 맞는 것일까요. ...
찰팍찰팍, 철퍽철퍽. 장맛비가 내리는 맨땅의 운동장은 패여있는 깊이를 알 수 있게끔 맨발로 지나가면 소리가 다릅니다. 우산을 쓴 채 빗속으로 운동장을 걷는 재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런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큰 운동장을 혼자서 즐기는 특권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고, 또 하나는 평소 흙의 촉감만 느끼고 걷던 그 코스에 물방울이 주는 느낌까지 더해져 투 트랙을 동시에 걷는 기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일년 중 맨발로 빗속을 누빌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질 않습니다. 겨울은 물론이지만, 초봄과 늦가을에는 비가 오면 운동장에 냉기가 느껴져 맨발 걷기는 좀처럼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여름에 내리는 소낙비는 쉽게 걷는 길을 내주진 않습니다. 금방 그치는 소낙비는 이내 열기 가득한 한여름의 공기에 자리를 양보하고 떠나버리고 맙니다. 습하고 뜨거운 공기를 마셔가면서 걸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올해 첫 장맛비가 내리던 날 맨발걷기를 나갔습니다. 일년 중 자주 느낄 수 없는 그 촉감의 중독성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걷다 보면 장마기간의 첫 비가 주는 즐거움은 고마움으로 다가옵니다. 장마가 한창일 때의 운동장은 찰흙처럼 변합니다. 질퍽질퍽이는 그 느낌은 첫 장맛비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장마의 짧은 첫 비를 매년 기다립니다. 오래 느낄 수는 없는 즐거움이지만 짧게 왔다 가는 그 첫비는 6월의 선물처럼 반갑습니다. 그러다 장마가 한참동안 떠나질 않고 비를 뿌려대면, 빗속 맨발걷기도 지칩니다. 햇볕속에서 뽀송뽀송한 운동장의 흙을 밟던 그 느낌이 그리워집니다. 이것도 잠시입니다. 한여름의 태양아래서 몇번을 걷다보면 차라리 장마가 낫다는 생각이 파고듭니다. 사계절은 늘 왔다가 가버리니깐 생길 수가 있습니다. 여름만 존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추운날만 365일을 채우질 않고, 봄과 가을이라는 완충재까지 끼워넣어서 아름다운 네 계절을 빚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계절은 교훈을 줍니다. 계절이라는 하나의 자리...
사는 곳이 아파트 저층이라서 뒷 베란다에서는 곧은 소나무의 모습을 늘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계절따라 큰 변화는 없는 소나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이 소나무에 늦은 봄날 비둘기 한 쌍이 자주 들락거리더니, 이내 부지런히 둥지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주운 가지 물어 나르더니 부리로 툭툭 둥지의 틀을 잡아내고 곧장 집을 완성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뿐만이 아닙니다. 이 소나무는 10여년 전부터 비둘기들이 집을 짓고 새끼를 품고 여름과 함께 역동적인 생활을 꾸려나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몇년전부터는 비둘기들이 둥지 트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불편한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비둘기들이 발길을 끊은 이유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다시 비둘기가 다시 찾아와서 반갑다며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처음 둥지를 튼 비둘기의 자손들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비둘기들인지도 궁금해 하며 다시 관찰모드로 들어가봤습니다. 이번에는 둥지를 틀자마자 며칠 안돼서 몇개의 알을 낳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고는 부지런히 알을 품더니 며칠전에는 드디어 새끼 비둘기들이 엉성한 깃털을 갖춘 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둥지로 만든 나뭇가지와 새끼들의 색깔이 엇비슷해 몇마리인지는 구분을 할 수 없지만 2마리 이상이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세상에 나온지 얼마되지도 않은 비둘기 새끼이지만 생존본능은 신기할만큼 대단해 보였습니다. 까치가 소나무에 올라타면 새끼들은 어미를 기다리며 쳐들은 고개를 얼른 낮게 감춥니다. 까치가 떠나고나서야 먹이를 물고오는 어미를 기다리며 다시 고개를 쳐듭니다. 어디서 배우지도 않은 집짓기를 하지않나,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도 위협적인 새들이 나타나면 몸을 낮추며 자연속에서 살아갑니다. 생존 본능은 인간보다 짐승들에게서 훨씬 빠르게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찾을 물건때문에 어머니 방에 최근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방은 늘 시간이 멈춘 느낌을 줍니다. 새로 산 물건은 거의 없고, 오래된 것들만 구석구석 빈 공간에 놓여져 있습니다. 책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다리가 네개 달린 작은 밥상위에는 친구와 친척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낡은 수첩이 있고, 제가 어릴적부터 갖고 있었던 서랍장 위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수필집과 성경책이 보입니다. 그리고 침대 옆에는 역시 오래된 라디오가 친한 친구처럼 다정하게 있습니다. 절약이 몸에 익숙한 당신에게는 새로운 물건은 늘 사치처럼 보였고, 한 번 산 물건은 늘 관리를 잘해서 교체하는 일이 거의 없게 합니다. 어머니 방을 살펴보던 중 눈에 들어오는 게 벽에 있었습니다. 둥근 모양의 벽시계. 이 또한 오래전에 구매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벽시계를 하나 사달라는 말을 하셨을땐, 의아해 했습니다. 좀처럼 하지않는 요구이기때문입니다. 물건 고르는 것도 까다로운 어머니는 이런저런 조건을 갖춘 시계를 사달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크지도 않고, 초침이 움직일 때 소리가 안나는 조용한 시계를 찾으신겁니다. 일찍 잠에서 깨어나시지만 몇시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답답한 적이 종종 있었나봅니다. 낮잠을 주무시고 깰때는 밤인지, 새벽인지 순간 헷갈려하신 적도 있다합니다. 그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침대에서 누워 보면 쉽게 보이는 위치에 걸어놓을 벽시계가 필요했는 것입니다. 저는 신나는 마음에 시계를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모처럼 물건을 사달라는 요청이 너무 기뻤고, 예전과 다른 모습이 너무 반갑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쇼핑을 어머니와 함께 노트북을 통해 쉽게 끝냈습니다. 며칠 후 시계를 받은 어머니는 "시계가 소리가 안나고 크기도 딱 맞아 좋다"며 저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시계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벽에 위치를 잡고 못질을 해놨기 때문에 어머니는 받은 시계를 바로 벽에 걸 수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도 시간때문에 더이상 불편해 하질 않을...
집안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화분이 세개 놓여져 있습니다. 그중 십여년 전에 심어진 동백나무는 키가 작지만 봄에 앞서 붉은 색 꽃을 짙게 피워서 계절의 시계같은 역할을 합니다. 나머지 두개의 화분에 심어진 식물은 꽃을 피우진 않지만 사계절 큰 변화없이 키만 조금씩 자라나고 있습니다. 세개의 화분중 유일하게 꽃 피우는 동백은 꽃을 기다리는 마음에 자주 들여다 봅니다. 꽃만 기다리다 보니, 세심한 관찰을 하지 못한채 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키가 자라지도 않고, 꽃망울이 맺히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이내 떨어져 버리는 이상한 징조를 몇년전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분갈이를 안해줘서 영양분이 부족했을거라는 생각에 화분의 오래된 흙을 비우고 새로운 흙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물을 줄때마다 물이 잘 빠지지 않았던 이유도 분갈이를 하면서 알았습니다. 흙이 시멘트처럼 굳어 있어 공기가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뿌리의 흙까지 털고 씻어냅니다. 뿌리도 힘없이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긴 시간동안 동백은 화분속에서 고통을 견뎌내며 개화를 했다는 사실에 꽃 피기기만 기다리며 봄 소식을 전해들으려는 마음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그 한계에 다다르자 꽃망울을 힘없이 떨어트리며 아픔의 신호를 소리없이 보내며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쳤던 것입니다. 분갈이를 한 이후에는 잔가지도 잘 뻗어나고 초록의 잎도 더욱 짙은 색깔을 내며 건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꽃망울도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맺히고, 붉은 꽃이 활짝 피면서 생존의 시그널을 활기차게 보내고 있습니다. 아픈 신호를 제때 알아보지 못한 죄책감때문에 동백화분뿐만 아니라, 나머지 두 화분의 식물도 세심하게 관찰합니다. 영영제도 하나씩 나란히 꽂아두면서 마음의 빚을 갚고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모습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불편하고 힘든 상황이 펼쳐지면 거울 속 장면만 바라봐서는 해법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거울을 비추는 마음을 들여다 봐야합니다. 마음이 그 ...
차를 세우고 걸어서 조금만 이동하면 야트막한 언덕길이 시작됩니다. 운동 중에서 걷기를 가장 즐겁고 쉽게 하기 때문에 이 길을 틈나는대로 찾아옵니다. 흙길의 양쪽에는 가로등처럼 심어져있는 아카시아나무가 하늘에 닿으려는 욕심때문인지 높게 높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 길은 계절따라 변합니다. 아카시아의 변신을 길위에서도 그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겨울을 앞둔 지금은 갈색으로 변한 나뭇잎이 길위를 푹신하게 죄다 덮어놓았습니다. 흙을 밟는 바삭바삭 소리대신 매끈한 느낌을 운동화를 통해 전달받습니다. 올려다보면 그동안 잎으로 가려왔던 파란색 하늘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늘 대신 자신의 꽃과 잎을 감상하려고 했는지 긴 시간동안 그렇게 하늘을 꼭꼭 숨겨왔던 모양입니다. 여름이 오기전에는 이 길은 겨울에 내리는 눈이 뒤덮어 놓은 듯한 하얀길로 변신합니다.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 꽃들이 늦은 봄의 바람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듯이 살포시 길위에 내려앉았기 때문입니다. 걷기를 망설이게 하는 순간입니다. 예쁜 꽃을 밟고 지나가야하는데, 미안함이 찾아옵니다. 자주 오는 덕에 하나의 길이 변신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선물을 받은 겁니다. 길이 본연의 모습인 흙을 드러내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떨어진 꽃이 바람을 타고 또 다른 곳으로 날아가고, 갈색 양탄자처럼 덮여있던 낙엽들이 겨울 바람에 휩쓸려 떠나야 흙을 밟을 수 있습니다.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이 길이 그래서 지겹지 않습니다. 시계가 없어도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 길을 벗어나면 시멘트로 포장된 길과 아스팔트가 깔린 길이 나타납니다. 이 곳에는 아카시아길에서 날아온 꽃과 낙엽이 듬성듬성 나뒹굴고 있습니다. 아카시아가 그려낸 멋진 풍경과는 사뭇 정반대의 느낌을 줍니다. 허전하고 삭막함이 발끝으로 전해져옵니다. 길따라 나무가 많지 않아서 계절따라 변하는 모습도 없고, 여름이면 땡볕이 그대로 내리쬐고 겨울이면 찬바람이 막힘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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