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멈추는 것은 마음대로 되질 않습니다. 감정의 선에 전원이 켜지 듯 한 순간에 흘러 내리는 눈물은 그냥 흘러나오게 두는 것이 오히려 편할 수가 있습니다. 오래된 가요를 가수들이 부르는 TV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무대가 나오던 화면에서 방청석으로 카메라를 돌리면 어르신들이 항상 빈자리 없이 앉아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화면은 클로즈 업이 됩니다. 들려오는 노래에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닦아내는 장면을 한 번씩 비춥니다. 어렸던 저는 그 모습을 의아스럽게 바라봤습니다. 눈물을 왜 흘리시지. 노랫말도 너무나도 따분하고 온통 옛날 이야기 뿐인데... 그랬던 저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서야 그 눈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수학여행 중에 들었던 노래를 유튜브에서 우연히 다시 듣게 됩니다. 장르는 발라드이지만 노래 자체는 별다른 매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눈물이 납니다. 노래가 그 시절로 돌아가는 스위치를 켠 것입니다. 멀리 설악산까지 가기 위해선 수학여행 버스는 해가 뜨기도 전에 출발을 해야했습니다. 그래도 늦게 도착한 친구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를 벗어나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이 자유롭고 즐거운 수학여행의 분위기를 곧장 가져다 주었습니다. 참새와 참돔 휴게소에 잠시 내리면 아무런 배경이 없더라도 친구들끼리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 찍을 곳이 많이 있을 건데도 필름 아까운 줄 모르고 카메라 셔터를 쉽게 눌러 버립니다. 그때의 사진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진첩에도 있고, 기억의 공간에도 남아있습니다. 해맑은 미소가 가득한 그 사진들이 우리들의 환승역을 담은 것이라는 것은 뒤늦게 압니다. 어울렸던 친구들은 각자의 인생 기차를 타고 떠납니다. 종종 보는 친구도 있지만, 고등학교 졸업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만났던 친구도 있습니다. 맑았던 그 얼굴에는 어떤 인생 기차를 타고 달려왔는지 쉽게 알 ...
"성격은 예민해도 반찬 투정 한 번 안하고 먹는 것 보면 참 기특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찾아뵐 때 한번씩 밥상을 차려 주시면서 어머니는 이 말씀을 건네시곤 합니다. 일 하시면서 어린 자녀를 키우기가 여간 쉽지 않았던 그 시절에도 어머니는 가족 식사에 정성을 쏟아부었습니다. 제철 먹거리 위주로 반찬을 만들어야 영양분이 풍부하다는 그 생각으로 음식을 만든 덕분에 밥상은 늘 사계절을 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일이 바쁠 때는 반찬이 적은 경우도 잦았습니다. 그래서 부추김치와 멸치 볶음을 기본 반찬으로 세팅해 두십니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손이 자주 가는 음식을 파악하셨던 겁니다. 어른이 되고나서 회사 동료들과 식사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 밥을 함께 먹을 땐 이들은 종종 맛집을 찾기위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곤 합니다. 이때 저는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습니다. 음식점 선택의 기준이 맛이 아니라 청결과 조용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취향을 내세우면 함께 식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이들이 선택한 장소로 묵묵히 따라가기만 합니다. 맛집에 집착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릴 적부터 음식은 허기만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양념으로 혀를 현혹시키려는 음식점을 많이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제철 좋은 재료로 만든 어머니의 반찬에 익숙한 탓에 오직 양념 맛 밖엔 맛볼 수 없는 그런 음식들이 입맛에 맞을 리는 없습니다. "이렇게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어?"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찬이 없을 때는 시원한 물에 밥을 말아서 먹습니다. 반찬 하나 없어도 즐거운 식사를 합니다. 쌀밥의 맛을 알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밥을 천천히 오래오래 씹으면 은은한 단맛이 혀에 닿습니다. 이 맛은 어릴 때 찾아낸 것입니다. 놀다가 밥을 먹으러 집에 오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반찬이 없을 땐 급하게 물에 말아서 밥을 먹고 다시 나가서 놀곤 했습니다. ...
차를 세우고 걸어서 조금만 이동하면 야트막한 언덕길이 시작됩니다. 운동 중에서 걷기를 가장 즐겁고 쉽게 하기 때문에 이 길을 틈나는대로 찾아옵니다. 흙길의 양쪽에는 가로등처럼 심어져있는 아카시아나무가 하늘에 닿으려는 욕심때문인지 높게 높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 길은 계절따라 변합니다. 아카시아의 변신을 길위에서도 그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겨울을 앞둔 지금은 갈색으로 변한 나뭇잎이 길위를 푹신하게 죄다 덮어놓았습니다. 흙을 밟는 바삭바삭 소리대신 매끈한 느낌을 운동화를 통해 전달받습니다. 올려다보면 그동안 잎으로 가려왔던 파란색 하늘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늘 대신 자신의 꽃과 잎을 감상하려고 했는지 긴 시간동안 그렇게 하늘을 꼭꼭 숨겨왔던 모양입니다. 여름이 오기전에는 이 길은 겨울에 내리는 눈이 뒤덮어 놓은 듯한 하얀길로 변신합니다.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 꽃들이 늦은 봄의 바람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듯이 살포시 길위에 내려앉았기 때문입니다. 걷기를 망설이게 하는 순간입니다. 예쁜 꽃을 밟고 지나가야하는데, 미안함이 찾아옵니다. 자주 오는 덕에 하나의 길이 변신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선물을 받은 겁니다. 길이 본연의 모습인 흙을 드러내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떨어진 꽃이 바람을 타고 또 다른 곳으로 날아가고, 갈색 양탄자처럼 덮여있던 낙엽들이 겨울 바람에 휩쓸려 떠나야 흙을 밟을 수 있습니다.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이 길이 그래서 지겹지 않습니다. 시계가 없어도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 길을 벗어나면 시멘트로 포장된 길과 아스팔트가 깔린 길이 나타납니다. 이 곳에는 아카시아길에서 날아온 꽃과 낙엽이 듬성듬성 나뒹굴고 있습니다. 아카시아가 그려낸 멋진 풍경과는 사뭇 정반대의 느낌을 줍니다. 허전하고 삭막함이 발끝으로 전해져옵니다. 길따라 나무가 많지 않아서 계절따라 변하는 모습도 없고, 여름이면 땡볕이 그대로 내리쬐고 겨울이면 찬바람이 막힘없이 ...
때가 돼서 보따리를 싸고 떠날 채비를 하는 여름, 때가 돼서 보따리를 들고 찾아올 채비를 하는 가을이 만나는 요즘입니다. 끝나지 않을 듯한 무더위도 계절의 룰에 따라 내년을 약속하며 물러나는 모습에 자연의 매너를 느끼게 합니다. 아직 완전하게 떠나지 못한 더위에 가을은 이미 찾아와 있습니다. 등산로에 들어가는 오솔길에는 도토리나무가 길 따라 심어져 청솔모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고, 먹으려다 놓친 도토리는 오솔길 위에 떨어져 있었나봅니다. 이 오솔길에 아주머니 두분이 등산복 차림으로 손에는 검은 봉다리를 들고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담고 있었습니다. 더위가 남아있는 탓에 줍는 것이 가을의 도토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뭘 줍고 계세요"라며 앞서 오던 한 분에게 여쭸더니 "도토리입니다". 어느새 윤기가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도토리가 가을의 도착을 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쳐지나가는 대화를 하는 동안 먼저 걸어오시던 아주머니는 눈에 띄는 도토리를 모두 담진않는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뒤에 따라오시던 분의 몫을 남겨둔채 떨어져있던 도토리를 띄엄띄엄 주워서 자신의 봉다리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뒤따라 오던 분도 허리를 숙이며 도토리를 주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좁은 오솔길이다 보니 마주 올 등산객이 지나갈 통로도 마련하기 위해선 두분이 옆으로 나란히 도토리를 줍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신 건지, 아니면 대화없이 조용히 각자가 가을 맞이를 하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는지 거리를 꽤 두고 도토리 줍기에 한창이었습니다. 앞선 분의 도토리 남겨두며 걸어가는 배려와 뒤따른 분의 앞선 분에 대한 믿음이 오솔길에서 공생의 걸음걸이를 담아냈습니다. 배려와 믿음이 없었다면 나란히 걷거나 앞서서 걸으며 많은 도토리를 손에 넣으려고 걸음을 재촉했을 겁니다. 그런 경쟁의 걸음에도 오솔길이 끝날때에는 봉다리에 든 도토리 갯수는 비슷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두 분의 걸음에는 찾아온 가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유의 ...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상자에서 쏟아집니다. 짙은 푸른 밤 하늘에 떠있던 노란 별들이, 그 아래의 마을과 함께 1000피스의 퍼즐로 분해된 순간입니다. 세계적 명작이 고난과 인내의 시간을 알리며 방바닥에 어지럽게 놓여져 있습니다. 유달리 퍼즐 맞추기를 좋아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걸 언제 다 맞추지'라며 바라보는 주변인의 시선은 한참 지나면 '저걸 언제 다 맞췄지'라며 놀라움으로 바뀝니다. 틈만 나면 퍼즐에 매달리고 그의 방 한구석은 퍼즐이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조각, 한조각 비슷한 색깔로 분류를 하고 난 뒤 마치 작가의 손이 움직이는 것처럼 집중하면서 작품을 완성해 갑니다. 마을이 나타나고 밤하늘이 보이고, 노란 별도 모습을 드러내면서 열흘정도 지나면 '별이 빛나는 밤'이 방바닥에 다시 빛납니다. 한 작품을 쏟고 맞추기를 몇 차례 반복하면 다른 작품이 등장합니다. 이 분의 취미를 알고있는 지인들은 선물을 고를때 너무나도 쉽습니다. 복잡한 퍼즐을 골라서 전달하면 무척이나 좋아하는 표정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퍼즐 맞추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의문의 퍼즐'이 생겨났습니다. 저게 재미있을까. 따분하고 복잡하게만 보이는데 체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닌지. 여러번 완성해서 손에 익은 퍼즐은 상자속에 다시 넣어 방 한구석에 보관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자의 높이도 올라만 갑니다. 예전 몇차례 손댔던 퍼즐들이 한번씩 다시 방바닥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특징이 있습니다. 색깔이 비슷해서 맞추기 힘든 작품들입니다. 의문의 퍼즐 하나는 그의 재선택 룰에서 맞출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 100피스짜리도 힘들어하는 그의 표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1000피스쯤이야'라는 눈빛으로 퍼즐을 맞춥니다. 이제는 간혹 2000피스짜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반복된 취미가 그에게 자신감을 가져다 준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의문 퍼즐조각은 완성 순간에서 찾았습니다...
찰팍찰팍, 철퍽철퍽. 장맛비가 내리는 맨땅의 운동장은 패여있는 깊이를 알 수 있게끔 맨발로 지나가면 소리가 다릅니다. 우산을 쓴 채 빗속으로 운동장을 걷는 재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런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큰 운동장을 혼자서 즐기는 특권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고, 또 하나는 평소 흙의 촉감만 느끼고 걷던 그 코스에 물방울이 주는 느낌까지 더해져 투 트랙을 동시에 걷는 기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일년 중 맨발로 빗속을 누빌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질 않습니다. 겨울은 물론이지만, 초봄과 늦가을에는 비가 오면 운동장에 냉기가 느껴져 맨발 걷기는 좀처럼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여름에 내리는 소낙비는 쉽게 걷는 길을 내주진 않습니다. 금방 그치는 소낙비는 이내 열기 가득한 한여름의 공기에 자리를 양보하고 떠나버리고 맙니다. 습하고 뜨거운 공기를 마셔가면서 걸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올해 첫 장맛비가 내리던 날 맨발걷기를 나갔습니다. 일년 중 자주 느낄 수 없는 그 촉감의 중독성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걷다 보면 장마기간의 첫 비가 주는 즐거움은 고마움으로 다가옵니다. 장마가 한창일 때의 운동장은 찰흙처럼 변합니다. 질퍽질퍽이는 그 느낌은 첫 장맛비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장마의 짧은 첫 비를 매년 기다립니다. 오래 느낄 수는 없는 즐거움이지만 짧게 왔다 가는 그 첫비는 6월의 선물처럼 반갑습니다. 그러다 장마가 한참동안 떠나질 않고 비를 뿌려대면, 빗속 맨발걷기도 지칩니다. 햇볕속에서 뽀송뽀송한 운동장의 흙을 밟던 그 느낌이 그리워집니다. 이것도 잠시입니다. 한여름의 태양아래서 몇번을 걷다보면 차라리 장마가 낫다는 생각이 파고듭니다. 사계절은 늘 왔다가 가버리니깐 생길 수가 있습니다. 여름만 존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추운날만 365일을 채우질 않고, 봄과 가을이라는 완충재까지 끼워넣어서 아름다운 네 계절을 빚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계절은 교훈을 줍니다. 계절이라는 하나의 자리...
군복무 시절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유격장에 갔을 때는 5월 이었습니다. 녹색의 잔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절에 산속에 있는 유격장은 맑은 공기와 향긋한 자연의 냄새가 맞이해줬습니다. 지옥같은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5월의 자연은 싱그러웠습니다. 도착한 유격장에서 낡은 훈련복으로 환복한 후 이내 지옥의 레이스는 시작됐습니다. 숨쉬기조차 자유롭지 못할 정도로 강도높은 훈련이 이어졌습니다.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고, 끊임없는 피티체조까지. 싱그러운 자연을 보고 냄새맡았던 그 평온함은 금세 사라지고, 흙먼지위에서 뒹굴고 선착순으로 뛰면서 지옥속으로 뛰어든 고통은 시작됐습니다. 흙먼지가 호흡과 함께 들어오면서 코와 입안은 바싹바싹 빠르게 말라가고, 훈련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흙으로 염색돼 누렇게 변했습니다. 체력은 이내 바닥을 드러내면서 유격장의 조교의 목소리도 겨우 들려오는 상황까지 내몰립니다. 땅바닥에 누운 채, 두 다리를 직각으로 세워 붙이고 좌우로 반동하는 그 순간에 참새가 보였습니다. 5월의 푸른 하늘 아래서 참새 서너마리가 전깃줄에 앉아 있었습니다. 훈련받는 모습을 재미있게 구경이라도 하듯이 전깃줄 위를 떠나지 않고 재잘거립니다. 지옥에서 천국을 바라보듯 그 참새들의 자유가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날아서 언제든 둥지로 갈 수 있다는 그 참새들과 집에 가고싶어도 당장은 갈 수 없는 유격장의 훈련병들이 대비대면서. 얼마전 친구와 후배를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인 횟집에 갔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시간이 남아 횟집 수족관을 살펴봤습니다. 횟집 입구 양쪽에 설치된 수족관의 한쪽에는 큰 참돔이 3마리 들어있었습니다. 흔히 보던 분홍빛의 예쁜 빛깔이 아니라 거무스름한 몸통입니다. 좁은 수족관에서도 조금씩 움직이면서 바다속이 아닌,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인간들의 육지 모습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쌀밥맛집 넓고 깊은 바다를 마음껏 헤엄쳐 놀던 참돔의 눈...
후두둑, 후두둑... 긴 겨울동안 애써 준비해왔던 벚꽃잔치가 떨어지는 빗방울에 속절없이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아직 남아있는 다른 나무의 넓은 갈색 잎에 쏟아지는 빗방울의 소리가 떨어져가는 벚꽃의 슬픈 배경음이 됩니다. 만개후 바람에 휘날리며 멀리 날아가는 벚꽃은 자유로운 해방감을 느끼게 하지만, 빗방울의 공격을 받아 예기치못한 운명을 맞닥뜨린 벚꽃의 모습은 안쓰럽습니다. 즐기는 걷기 코스에는 군데군데 벚꽃나무들이 꽤 많이 나란히 심어져 있어, 봄이 되면 걷기의 행복감을 더해줍니다. 빗방울에 추락하는 벚꽃의 슬픈 장면이 목격된 그 길은 조그마한 덩치로 심어져 있던 벚꽃나무가 몇년새 청년처럼 자라있습니다. 작은 덩치로 간격을 두고 심어져 있었지만, 어느새 서로의 가지들이 손을 맞잡은 듯 가깝게 붙어있습니다. 벚꽃이 병풍을 쳐놓은 듯 공간의 여백의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 벚꽃병풍의 틈에서 또다른 벚꽃들을 발견합니다. 수백미터정도 떨어져 있던 야트막한 뒷동산에도 겨울색의 옷을 벗지않은 나무들 사이로 하얗고 분홍분홍한 벚꽃 몇그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늘 걷던 길이지만 뒷동산에도 벚꽃나무가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게 보여 사람들이 가까이서 자신들을 볼 수는 없겠지만, 꽃을 피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떨어진 낙엽과 앙상한 가지만 남아 갈색의 겨울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화지위에 분홍의 수채화를 그려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수채화의 전시기간도 짧고, 다른 벚꽃들의 대규모 잔치에 밀려 이 뒷동산의 몇그루 안되는 벚꽃들은 늘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겨울이면 다른 나무와 함께 갈색에 파묻히고, 여름이면 뒷동산 전체가 초록으로 변하고 가을이면 함께 잎들을 떨구는 단체생활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뒷동산 벚꽃들은 봄이되면 다른 벚꽃나무들과는 달리 더욱 수채화 그리기에 정성을 쏟았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찾아주질 않아도, 뒷동산 벚꽃나무들은 꽃 피우고 지...
고등학생시절 체육시간, 오래달리기를 할 때에는 늘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운동장을 다섯바퀴 돌아야하지만 두바퀴 정도만 뛰어도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남은 세바퀴는 한바퀴 한바퀴마다 극도의 괴로움으로 강도를 높여만 갔습니다. 최하위 그룹으로 쳐져 뛰다보니, 지치지 않고 탱크처럼 달리던 선두는 어느새 한바퀴를 앞서 돌아 저를 추월하기도 합니다. 숨은 차오르고 때로는 구역질에다 어질어질하기까지 합니다. 두바퀴만 돌아도 이런 증상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선두가 휙하면서 지나가면서 뒷모습을 드러날때는 자존심마저 맨땅의 운동장 바닥을 뚫고 꺼져가면서 고통이 더욱 빠른 속도로 찾아옵니다. 고작 1000m를 달리면서 언제나 42.195km의 마라톤을 뛰는 기분. 뭔가 이상했습니다. 잘 뛰는 친구들도 별다르게 체력을 다지거나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달리기를 잘해 꽤나 주목을 받은 친구는 한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숨이 차고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습니다. 친구는 일주일에 두 세차례 학교 가기전 동네를 같이 뛰어보자고만 말하고 아침 일찍 만날 시간을 정해줬습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고통의 증상은 아침에 뛰어도, 동네에서 뛴다고해서 달라질리는 없었습니다. 고통이 시작되자마자, 달리기를 멈춥니다. '체육실기점수를 매기는 것도 아닌데...'라는 유혹의 목소리에 넘어간 것입니다. 걸어가는 제 모습을 뒷돌아 보면서 친구는 먼거리를 뛰고 돌아왔습니다. 이마에는 땀이 송송 맺혀있었지만, 개운한 표정이었습니다. "너는 뛰어도 아무렇지도 않냐"라는 말부터 건냅니다. 돌아온 답변이 신기했습니다. "힘든 때가 늘 있고, 힘들어도 그냥 힘들구나 정도만 느끼고 뛰다보면 힘듦이 사라지고 조용하게 뛸 수 있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는 고등학생때 벌써 '받아들이기'를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숨이 차오르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면 그 고통에 몸부...
한겨울 산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해가 떨어지는 속도에 맞춰 어둠도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당황스러움은 이내 공포감을 변했습니다. 자주 오르는 산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깊은 산골로 이어져 있습니다. 등산하는 산 뒤에는 높은 산봉우리가 이어져 있고 수십 키로 미터의 등산 길이 숨어있는 장대함도 느껴집니다. 길을 잃은 것은 평소의 하산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빚어졌습니다.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큰 길이 나올 것이고 가로등도 있으니, 해가 져도 귀가에는 전혀 문제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반대편 하산 길도 나뭇가지에 붉은색 리본을 달려있어 길을 헷갈리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리본들이 안보이면서 판단의 불안감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비슷한 너비의 두 길이 나타나면서 선택의 기로에 선 것입니다. 마을이 있을 거라고 생각된 곳을 향해 난 길로 들어섰습니다.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이 길은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갈림길로 올라가기에도 늦었다는 판단이 섭니다. 흘렸던 땀도 패딩점퍼 안에서 차가운 느낌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나무가 빼곡히 서 있는 경사 가파른 비탈길로 향했습니다. 휴대폰의 배터리 잔량을 먼저 확인합니다. 플래쉬를 켜고 가면 배터리가 얼마나 버틸지도 걱정거리를 더 보탭니다. 플래쉬를 사용하다가 배터리가 10% 정도 남으면 구조 요청을 해야겠다는 계산을 하면서 험한 비탈길을 내려갑니다. 작은 고개를 몇 개 넘고 나니 시냇물이 흘러갑니다. 멀리서는 마을 주택의 전등 빛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살았다, 이젠 집으로 갈 수 있다'. 떨어진 해와 추위가 겹쳐 만들어낸 공포감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마을 길로 들어서면서 평온해진 마음은 또다시 복잡해집니다. 길 하나를 제대로 선택 못해서 이렇게 고생하다니. 처음 가는 곳은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을 켜고도 제대로 못찾아 헤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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