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플레이리스트
여름을 흉내내고 있는 5월초, 벌써 뜨거운 햇볕을 등에 업은 채 잠시 걸어 더 걸어갑니다. 이맘때에만 볼수 있는 늦봄의 눈을 만나러 숲속에 도착합니다. 하얀 아카시아 꽃이 숲길을 5월의 눈길로 변신시킵니다.
아카시아 꽃길은 멀리서 꽃내음으로 위치를 알립니다. 바람에 실려오는 향긋한 꽃향기가 꽃길에 발을 딛기도 전에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세면 더 먼 곳까지 그 향기를 실어나릅니다. 바람은 꽃내음을 조절하는 자동 풍량 조절기처럼, 강약의 리듬감을 살리면서 때로는 진하게 때로는 연하게 코끝으로 아카시아꽃을 선사합니다. 가슴 가득 그 향기를 들이마십니다. 같은 향기이지만 느낌은 다릅니다. 바람의 변주곡입니다.
봄의 하얀 눈길 위에 겨울 눈내리는 날 발자국을 남기듯 매년 가슴 깊숙이 선명한 향기의 느낌을 찍어둡니다. 사뿐사뿐 지나온 아카시아 꽃길이 끝날때에도 바람이 세차게 불어옵니다. 꽃향기를 멀리 내보내려고 단단히 작정이라도 한 듯이 멈추질 않습니다.
이 바람은 숲만 보고 걷던 그 길에서 나무를 보게 해줍니다. 차르르, 차르르. 나뭇잎끼리 부딪히는 소리에 눈을 돌려보니, 나무들이 바람 장단에 춤을 추고 있습니다. 햇빛 조명아래에 초록빛을 반짝이며 앞면과 뒷면을 번갈아 보여주며 카드섹션도 펼칩니다. 빼곡히 심어져 있어, 누가 먼저 하늘 가까이 닿을지 경쟁을 펼칩니다. 키 크고 갸냘픈 몸통을 바람결에 맞춰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군무를 즐깁니다. 숲속에 가게를 오픈한 걸까요. 나무를 막대풍선처럼 만드는 바람의 장난끼도 재밌습니다.
앞만 보고 걸어갔던 숲길의 옆도 보면서 가라고 바람이 한껏 재능을 뽐내며 선물을 주는 날입니다. 바람이 부는 봄날의 숲속은 바람의 축제를 즐기다 보면, 발걸음이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코에는 향긋한 선물을, 귀에는 청량한 선물을 챙기기 바쁘기 때문입니다.
선물을 한아름 안고 내려오는 길, 바람이 마지막 선물까지 마련해줍니다. 숲속을 무대로 온갖 연출력을 보여줬던 바람이 이번에는 하늘에서 장엄한 무대를 펼칩니다.
아카시아 꽃, 나무에 이어 등장한 배우는 구름입니다. 파란 천으로 만든 무대위에 흰 솜 옷을 입은 구름은 동네에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입니다. 덩치 큰 형 구름 뒤에는 동생이 따라다닙니다. 한참이나 떨어져 있던 동생을 바람이 형 쪽으로 밀어줍니다. 덩치 작은 동생이 속도를 내며 빠르게 달려갑니다. 바람은 동생의 뛰어가는 모습도 연출하는 섬세함도 자랑합니다.
형을 만난 동생은 동네친구들과 변신게임을 즐깁니다. 돌고래가 되었다가 하트도 됩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그려낸 5월의 스케치에는 바람이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서도 바람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를 못듣는 사람들에게는 숲속에서 연출했던 것처럼 오늘이라는 무대에서 보여줍니다. 변화무쌍한 그 무대는 바로 마음의 바람이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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