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본색
후두둑, 후두둑...
긴 겨울동안 애써 준비해왔던 벚꽃잔치가 떨어지는 빗방울에 속절없이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아직 남아있는 다른 나무의 넓은 갈색 잎에 쏟아지는 빗방울의 소리가 떨어져가는 벚꽃의 슬픈 배경음이 됩니다. 만개후 바람에 휘날리며 멀리 날아가는 벚꽃은 자유로운 해방감을 느끼게 하지만, 빗방울의 공격을 받아 예기치못한 운명을 맞닥뜨린 벚꽃의 모습은 안쓰럽습니다.
즐기는 걷기 코스에는 군데군데 벚꽃나무들이 꽤 많이 나란히 심어져 있어, 봄이 되면 걷기의 행복감을 더해줍니다. 빗방울에 추락하는 벚꽃의 슬픈 장면이 목격된 그 길은 조그마한 덩치로 심어져 있던 벚꽃나무가 몇년새 청년처럼 자라있습니다. 작은 덩치로 간격을 두고 심어져 있었지만, 어느새 서로의 가지들이 손을 맞잡은 듯 가깝게 붙어있습니다. 벚꽃이 병풍을 쳐놓은 듯 공간의 여백의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 벚꽃병풍의 틈에서 또다른 벚꽃들을 발견합니다. 수백미터정도 떨어져 있던 야트막한 뒷동산에도 겨울색의 옷을 벗지않은 나무들 사이로 하얗고 분홍분홍한 벚꽃 몇그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늘 걷던 길이지만 뒷동산에도 벚꽃나무가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게 보여 사람들이 가까이서 자신들을 볼 수는 없겠지만, 꽃을 피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떨어진 낙엽과 앙상한 가지만 남아 갈색의 겨울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화지위에 분홍의 수채화를 그려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수채화의 전시기간도 짧고, 다른 벚꽃들의 대규모 잔치에 밀려 이 뒷동산의 몇그루 안되는 벚꽃들은 늘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겨울이면 다른 나무와 함께 갈색에 파묻히고, 여름이면 뒷동산 전체가 초록으로 변하고 가을이면 함께 잎들을 떨구는 단체생활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뒷동산 벚꽃들은 봄이되면 다른 벚꽃나무들과는 달리 더욱 수채화 그리기에 정성을 쏟았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찾아주질 않아도, 뒷동산 벚꽃나무들은 꽃 피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성장했을 겁니다. 쉬지않는 반복으로 덩치가 커져, 마침내 멀리서도 사람들의 눈에 들어올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뒷동산 벚꽃나무들은 알고 있습니다. 다른 나무들과 함께 있어도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야한다는 소명을.
함께 있어도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본색을 꽃피우는 것이 아름다운 조화입니다. 달라도 공존해야 다채로운 색깔과 단단한 밑그림을 그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 봐주지않아도 묵묵히 자라서 결국은 자신의 본색을 화려하게 꽃피우는 뒷동산의 벚꽃은 파란 하늘과 아직 겨울 옷을 다 벗지않은 나무들이 있어서 분홍 수채화를 그릴 수가 있습니다.
파란색,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야만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그리고 영원한 마침표는 없습니다. 마침표가 찍혀야 다른 문장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마침표는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입니다.
분홍 수채화 전시회를 열자 마자 얼마 안돼 종료하지만, 뒷동산 벚꽃나무는 매년 그 전시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관람객이 없어도 묵묵히 전시회 규모를 키워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관람객들이 몰립니다.
다른 색깔의 도움을 받아 함께 마련한 분홍전시회라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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