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맛집

인생맛집


 "성격은 예민해도 반찬 투정 한 번 안하고 먹는 것 보면 참 기특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찾아뵐 때 한번씩 밥상을 차려 주시면서 어머니는 이 말씀을 건네시곤 합니다.

 일 하시면서 어린 자녀를 키우기가 여간 쉽지 않았던 그 시절에도 어머니는 가족 식사에 정성을 쏟아부었습니다. 제철 먹거리 위주로 반찬을 만들어야 영양분이 풍부하다는 그 생각으로 음식을 만든 덕분에 밥상은 늘 사계절을 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일이 바쁠 때는 반찬이 적은 경우도 잦았습니다. 그래서 부추김치와 멸치 볶음을 기본 반찬으로 세팅해 두십니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손이 자주 가는 음식을 파악하셨던 겁니다.

 어른이 되고나서 회사 동료들과 식사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 밥을 함께 먹을 땐 이들은 종종 맛집을 찾기위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곤 합니다. 이때 저는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습니다. 음식점 선택의 기준이 맛이 아니라 청결과 조용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취향을 내세우면 함께 식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이들이 선택한 장소로 묵묵히 따라가기만 합니다.

 맛집에 집착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릴 적부터 음식은 허기만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양념으로 혀를 현혹시키려는 음식점을 많이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제철 좋은 재료로 만든 어머니의 반찬에 익숙한 탓에 오직 양념 맛 밖엔 맛볼 수 없는 그런 음식들이 입맛에 맞을 리는 없습니다.

 "이렇게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어?"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찬이 없을 때는 시원한 물에 밥을 말아서 먹습니다. 반찬 하나 없어도 즐거운 식사를 합니다. 쌀밥의 맛을 알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밥을 천천히 오래오래 씹으면 은은한 단맛이 혀에 닿습니다. 이 맛은 어릴 때 찾아낸 것입니다. 놀다가 밥을 먹으러 집에 오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반찬이 없을 땐 급하게 물에 말아서 밥을 먹고 다시 나가서 놀곤 했습니다. 후다닥 먹고 치운 한 그릇이었기에 밥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는 속도로 식사를 해결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밥을 먹기 싫었지만 배가 고플 것을 대비해서 미리 챙겨 먹었습니다. 같이 놀 친구들과의 약속시간도 많이 남아 있어서 쌀밥을 천천히 씹었습니다. 바로 넘기지도 않고 오래오래 씹었더니 설탕 같은 단맛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삼시세끼 밥을 먹어도 알지 못했던 그 단맛을 처음으로 알아챈 날이었습니다. 마치 보물지도를 발견한 느낌처럼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밥 먹는 법 찾아낸 것입니다.

 이 맛을 느낀 후부터는 모든 음식은 천천히 먹는 습관을 장착하게 됩니다. 우엉, 물김치, 감자볶음과 좋아하는 부추김치와 멸치볶음도 스무디처럼 될 때까지 씹습니다. 처음 입에 닿던 그 맛과 함께 다른 맛도 전해집니다. 음식재료의 참 맛이 늘 마침표를 장식하면서 식사를 즐길 수가 있습니다.

 끝까지 가보면 전혀 예상도 못했던 즐거움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와 닿는 양념 맛에 빠져 혀가 현혹되다가도, 그 양념 맛이 사라지면 이내 음식 맛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거기서 더 씹으면 또 다른 진실의 맛이 기다립니다.  끝까지 오래 오래 씹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맛입니다.

 후회와 불안이라는 양념이 사라질 때까지 씹고 또 씹으면 삶의 참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끝까지 가야 찾을 수 있는 인생의 진짜 맛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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