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나침반


  한겨울 산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해가 떨어지는 속도에 맞춰 어둠도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당황스러움은 이내 공포감을 변했습니다. 

 자주 오르는 산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깊은 산골로 이어져 있습니다. 등산하는 산 뒤에는 높은 산봉우리가 이어져 있고 수십 키로 미터의 등산 길이 숨어있는 장대함도 느껴집니다. 길을 잃은 것은 평소의 하산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빚어졌습니다.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큰 길이 나올 것이고 가로등도 있으니, 해가 져도 귀가에는 전혀 문제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반대편 하산 길도 나뭇가지에 붉은색 리본을 달려있어 길을 헷갈리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리본들이 안보이면서 판단의 불안감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비슷한 너비의 두 길이 나타나면서 선택의 기로에 선 것입니다. 마을이 있을 거라고 생각된 곳을 향해 난 길로 들어섰습니다.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이 길은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갈림길로 올라가기에도 늦었다는 판단이 섭니다. 흘렸던 땀도 패딩점퍼 안에서 차가운 느낌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나무가 빼곡히 서 있는 경사 가파른 비탈길로 향했습니다. 휴대폰의 배터리 잔량을 먼저 확인합니다. 플래쉬를 켜고 가면 배터리가 얼마나 버틸지도 걱정거리를 더 보탭니다. 플래쉬를 사용하다가 배터리가 10% 정도 남으면 구조 요청을 해야겠다는 계산을 하면서 험한 비탈길을 내려갑니다. 

 작은 고개를 몇 개 넘고 나니 시냇물이 흘러갑니다. 멀리서는 마을 주택의 전등 빛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살았다, 이젠 집으로 갈 수 있다'. 떨어진 해와 추위가 겹쳐 만들어낸 공포감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마을 길로 들어서면서 평온해진 마음은 또다시 복잡해집니다. 길 하나를 제대로 선택 못해서 이렇게 고생하다니. 

 처음 가는 곳은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을 켜고도 제대로 못찾아 헤매는 경우가 잦은 '길치'가 한 겨울에 해떨어져가는 시각에 가보지도 못한 하산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무모한 시도를 두번 다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짐은 집에 도착하니깐 금세 사라집니다. 결국 집에 왔으니깐 완전히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길을 잃은 두려움도, 길을 다시 찾아야한다는 생존본능도 느꼈습니다. 평소 하산길을 선택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경험들입니다.

 방향을 놓쳤어도 잘못된 판단을 나무라면 안됩니다. 막막하고 칠흑같은 어둠속에서도 길을 찾으려고 하면 길은 반드시 나타나는 법입니다. 주저앉지않고 걸어나가면 길은 항상 마중 나옵니다. 멀리 돌아서 왔지만 집에 도착합니다. 같은 길만 가면 경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르는 길을 가면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두려움을 경험하면서 두려움에 친숙해지는 길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은 자주 마주칠 수록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새벽의 어둠처럼 끝없이 존재하진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인생의 새로운 나침반이 생기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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