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비행기

변수


  첫 종이 비행기의 몸통에는 한글이 아니면 숫자가 적혀 있었을 겁니다. 초등학교때 다 쓴 국어 숙제 노트나 수학 풀이 노트를 찢어서 종이 비행기를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노트를 조심스럽게 찢고 30cm 자를 갖다대서 칼로 반듯하게 잘라냅니다. 그리고 몇번 접으면 종이 비행기가 나옵니다.

 어릴적 종이 비행기는 두 종류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놀이도구입니다. 멀리 날려 보내기와 오래 떠있기. 종목마다 종이 비행기의 모양은 다릅니다. 멀리 날려보내기는 날개의 폭을 줄여 날렵하게 만들고, 오래 떠있기는 날개를 가장자리를 살짝 말아 올려주면 유리합니다. 

 '꿈을 실은 종이 비행기'라는 교과서적인 표현은 온데 간데 없이, 오로지 놀이에서 이기기 위해 집중합니다. 어린 나이에도 승부욕은 말릴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날개가 크면 더 오래 날 수 있을 것 같아 노트가 아니 큰 도화지를 접어서 비행기를 만들기도 하고, 두꺼운 종이로 만들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나름의 과학적 생각이 게임을 더욱 가열시킵니다.

 하지만 승부를 결정 짓는 것은 종이 비행기가 아니었습니다. 승리의 열쇠는 늘 바람이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람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으면 큰 날개의 종이 비행기도 제대로 날지 못하고, 손에서 놓아지자마자 바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칩니다. 멀리, 오래 날리기 위해 종이 비행기에 힘을 잔뜩 실은 채 날려보내도 바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 힘은 순간 '아~'라는 한숨으로 변하고 맙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종이 비행기 게임의 변수는 늘 '바람' 한가지뿐이지만, 세상살이의 변수는 한가지 이상임을 깨닫습니다. 힘껏 날려봤지만 바로 앞에 떨어지는 종이 비행기처럼, 의지 하나만으로는 멀리 날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변수에 초점을 맞추는 적응력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문제는 변수의 특성입니다. 변수가 몇개만 존재해도 경우의 수는 늘어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계산은 더욱 힘들어집니다. 그래도 승률을 높이기 위해선 변수를 철저하게 따져봐야한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이 확신은 꽤나 오래 갔습니다. 높은 승률이 뒤따라왔기 때문입니다.

 또 시간이 흐릅니다. 변수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변수가 변수를 낳고, 그 변수는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 더 이상 변수를 모두 고려할 능력이 안된다는 것을 복잡한 사회가 일깨워 줍니다. 종이 비행기를 만들어 바람의 흐름만 보고 날려보내면 되는데, 이제는 어떤 종이 비행기를 만들어야할 지 결정조차 못하게 된 것입니다. 종이 비행기 게임에 이기기 위해 나섰지만 정작 비행기는 가져오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기만 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릅니다. 그런데, 종이 비행기 게임을 처음하던 그 장면으로 되돌갔습니다. 바람이라는 변수도 모른 채 잔뜩 기대감을 갖고 하늘 높이 날려보냅니다. 멀리 날아가면 기쁘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종이 비행기 날리기의 즐거움은 날려보내는 순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화려한 색종이로 만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접어서 날개만 만들어지면 종이 비행기가 되는 것이고, 손에서 날려지는 그 순간이 종이 비행기가 만들어주는 즐거운 해방감입니다. 

 운동장에서 아버지와 아이들이 종이 비행기를 날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드론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종이 비행기를 주워서 다시 날리고 즐거워합니다. 변수의 늪에 빠지지않고 종이 비행기를 날리는 그 순간을 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때에는 종이 비행기를 접어서 마음속에 간직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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