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m 마라톤
고등학생시절 체육시간, 오래달리기를 할 때에는 늘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운동장을 다섯바퀴 돌아야하지만 두바퀴 정도만 뛰어도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남은 세바퀴는 한바퀴 한바퀴마다 극도의 괴로움으로 강도를 높여만 갔습니다. 최하위 그룹으로 쳐져 뛰다보니, 지치지 않고 탱크처럼 달리던 선두는 어느새 한바퀴를 앞서 돌아 저를 추월하기도 합니다.
숨은 차오르고 때로는 구역질에다 어질어질하기까지 합니다. 두바퀴만 돌아도 이런 증상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선두가 휙하면서 지나가면서 뒷모습을 드러날때는 자존심마저 맨땅의 운동장 바닥을 뚫고 꺼져가면서 고통이 더욱 빠른 속도로 찾아옵니다.
고작 1000m를 달리면서 언제나 42.195km의 마라톤을 뛰는 기분. 뭔가 이상했습니다. 잘 뛰는 친구들도 별다르게 체력을 다지거나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달리기를 잘해 꽤나 주목을 받은 친구는 한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숨이 차고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습니다. 친구는 일주일에 두 세차례 학교 가기전 동네를 같이 뛰어보자고만 말하고 아침 일찍 만날 시간을 정해줬습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고통의 증상은 아침에 뛰어도, 동네에서 뛴다고해서 달라질리는 없었습니다.
고통이 시작되자마자, 달리기를 멈춥니다. '체육실기점수를 매기는 것도 아닌데...'라는 유혹의 목소리에 넘어간 것입니다. 걸어가는 제 모습을 뒷돌아 보면서 친구는 먼거리를 뛰고 돌아왔습니다. 이마에는 땀이 송송 맺혀있었지만, 개운한 표정이었습니다. "너는 뛰어도 아무렇지도 않냐"라는 말부터 건냅니다. 돌아온 답변이 신기했습니다. "힘든 때가 늘 있고, 힘들어도 그냥 힘들구나 정도만 느끼고 뛰다보면 힘듦이 사라지고 조용하게 뛸 수 있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는 고등학생때 벌써 '받아들이기'를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숨이 차오르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면 그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고통의 크기를 더욱 키웠던 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달리기의 끔찍한 기억들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TV에서 생중계 하는 마라톤을 보면 고등학생때의 그 고통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옵니다. 1000m도 아닌 42.195km를 어떻게 저런 무덤덤한 표정으로 달릴 수 있는지 신기할 뿐입니다.
요즘, 다시 달리기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집 근처 운동장을 나가보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손목에 워치를 차고 시간까지 재면서 뛰거나, 살을 빼기 위해 달리는 듯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트랙 옆 맨땅에서 맨발걷기를 하는 저를 지날때 마다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립니다. 너무나도 힘든지 '악!'소리를 크게 내며 뛰기도 합니다.
이번 겨울에는 즐기던 맨발걷기를 잠시 멈추고 달려볼 작정입니다. 찾아오는 고통을 이기려고 하지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겨내는 오묘한 체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오래전 그 친구가 말했 듯, 힘들어도 힘들구나 정도만 느끼는 도전을 합니다. 고통에 저항하면서 더욱 고통을 키우는 습관은 한발 한발씩 지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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