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거리두기
 

숲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초록색 잎이 하늘을 덮어보려고 하던 여름이 떠나고, 이제는 노란색으로 변해가는 나뭇잎이 하늘에 색칠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가을입니다. 

 나무는 피우는 꽃과 나뭇잎이 사람들의 시선을 끕니다. 꽃망울이 붉거나 노란 꽃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아름답고, 단풍이 물드는 장면은 계절의 달력이 바뀌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은 색의 잔치로 묵묵히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서로의 색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붉은색은 마음껏 붉도록, 푸른색도 마음껏 푸르도록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뒤엉켜 자라면 이색도 저색도 제대로 뽐낼 수 없다는 것을 아는지 서로가 일정한 영역을 갖도록 떨어져 있습니다. 비슷한 키의 나무들 사이에는 똑같은 나무들이 비집고 들어오질 않아야, 뻗어가는 나뭇가지가 기지개를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의 공간에는 작은 키의 나무가 자리를 잡도록 배려도 합니다.

 거리두기는 멀어지기가 아니고,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나무는 보여줍니다. 키가 작을 때는 거리가 떨어져 영영 만날 수 없는 것처럼 보여도 키가 커면 높은 곳에서 가지들끼리 손을 잡습니다. 여리고 어린 나무가 혼자 작은 키로 비바람을 겪고 추위도 인내해야 하지만, 빼곡히 붙어있을 때보다 햇빛을 더 많이 받고 영양분을 제공해주는 땅의 면적도 훨씬 더 차지하고 있습니다. 빠르고 단단하게 자라서 다시 만나는 기쁨은 거리를 뒀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름과 겨울의 만남은 그 사이사이에 봄과 가을이 연결해줍니다. 봄과 가을의 스펙트럼같은 만남은 여름과 겨울 덕분입니다. 떨어져 있어야 만남이 생깁니다.

 가까이 있어 안보였던 것도 떨어져 있으면 보입니다. 땀 흘려 올라간 산 정상에서는 동네의 전경을 볼 수 있고, 동네에서는 산의 모양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사이의 공간이 없었다면 서로의 모습을 제대로 알 수도 없었을 겁니다.

 눈 앞의 꽃만 바라봐서는 나무가 병충해에 시달려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꽃과 함께 나무 전체를 볼려면 역시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친한 친구와 싸워 두번 다시 안볼 작정으로 등돌려 한참을 지냅니다. 그 한참의 시간에서 즐거웠던 우정이 되살아납니다. 우정의 성장도 거리두기가 도와줍니다.

 주변과의 관계가 멀어져 혼자 있으면 두려움이 생겨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전화통화를 하던 이와 연락이 끊기고, 자주 갖던 모임에도 나가지 못하면 불안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거리가 생기면 뜻밖의 선물이 찾아옵니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자신 내면과의 만남은 이때 시작됩니다. 바깥과 거리를 둬야 안으로 가깝게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 혼자만의 시간입니다. 무게를 재는 저울의 추처럼 한쪽과 거리를 두면 반대쪽은 가까워져 균형이 생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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