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자전거

자전거


  키가 자랄대로 자란 여름 풀과 색이 쏟아질대로 쏟아진 여름 꽃 사이로 자전거를 타면 만화 속 주인공이 됩니다.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감춤도 없이 드러나는 여름은 자연의 가장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합니다. 그런 풍경속에서 자전거의 속도를 내면 여름은 하나의 큰 수채화로 변하고, 움직이는 그림속에서 자전거를 모는 화가가 된 듯 만화같은 세상을 펼쳐냅니다.

 처음 만난 자전거는 어릴적 세발 자전거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재미를 알게된 꼬맹이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상상력으로 시골길을 떠나, 이내 미국으로 영국으로 프랑스로 간 적이 한 두번 아닙니다. 자전거는 세계여행을 떠나게 해주는 마법의 마차였습니다.

 중학생때 인생 두번째 자전거를 갖게됩니다. 학교가 집 근처에 있어서 통학수단은 아니었습니다.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니는 친구와 함께 수업을 마치고는 함께 자전거를 타고 친구집으로 가는 재미가 좋았습니다. 과수원 사이 흙길의 울퉁불퉁한 입체감이 그대로 느껴져 발음이 정확하게 나오질 않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달립니다. 하천위의 작은 다리도 건넙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해질녘에 집으로 출발합니다.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해가 져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자전거가 있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던 자전거가 어른이 되어서는 운동용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려는 생각을 하자마자 자전거가 떠 올랐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몸속에서 조용한 기억속으로 남아있던 자전거의 즐거움이 본능의 스위치를 켠 것입니다.

그런데 자전거 핸들을 잡는 손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한참이나 지나서 알게됩니다. 잡은 듯 안잡은 듯 모르던 어릴적 그 핸들의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핸들을 힘껏 잡고 달립니다. 목적지까지 시간을 재면서 숨이 차더라도 계속 달립니다. 길만 봅니다. 주변의 꽃과 풀은 그냥 스쳐 지나갑니다. 

 몇년전 여름 새벽입니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서 여름이면 이른 시각에 자전거를 끄내 출발합니다. 꿩 한마리가 속도를 내고 달리는 자전거를 보자 후다닥 놀라 날아갑니다. 집 근처에 있는 자전거길은 하천을 따라 길게 잘 뻗어있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이런 곳에 꿩이 다 있네'라는 생각에 자전거를 멈추고 금세 사라진 꿩의 뒷모습을 찾아 눈길을 돌립니다.

 그제서야 알게 됩니다. 자전거길에 이렇게 많은 여름풀과 꽃이 있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에는 시간을 재면서 달리지 않습니다.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따라 새록새록 변하는 여름의 풍경을 감상합니다. 고라니도 보입니다. 하천 위에는 새들도 날아다닙니다. 느려진 속도만큼, 더 많은 풍경이 다가옵니다. 그래도 목적지에는 도착합니다.

멈춰야 볼 수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장면들. 자전거는 인생을 싣고 달립니다. 균형을 잡고 계속 움직여야 쓰러지지 않습니다. 페달을 밟지않으면 곧장 자전거는 멈춥니다.그래서 계속 페달을 밟고 달려야합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페달밟기를 멈추고 자전거를 세워도 두 발로 땅을 짚고 서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다시 달리면 됩니다. 멈추고 다시 달리면 그 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라이딩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젠 자전거가 사라졌습니다. 영화를 스크린에 쏘는 영사기가 됐습니다. 이름모를 풀과 꽃으로 가득한 여름 그림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스크린 속에서 느릿느릿 차분한 호흡으로 달립니다. 자전거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여름만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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