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는 1m부터

달리기


  이메일 한 통이 눈에 띄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라고 시작되는 짧은 내용이었습니다. 스팸메일을 보내는 곳이 아니었기에 클릭해서 들어갔지만,  '뭐, 이런걸 갖고 축하한다는 말을 사용하냐'는 빈정거림이 곧장 일어났습니다. 괜히 읽었다는 생각에 다른 메일은 제목만 보고 메일함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나 '축하한다'는 메일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질 못했습니다. 왜, 축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시했는지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어떤 거창한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그대로 들통 나버렸습니다. 분명, 그 메일 속의 내용도 축하할 일은 맞습니다. 축하 메일을 보낸 이에게 미안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빠른 세상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DNA를 변형시킨 것 같습니다. 어릴적부터 뭐든 빨리 마무리하는 것을 능력과 동일시 했습니다. 이런 습관은 결국 과정의 의미는 묻혀버리고 항상 결과만 바라보는 자세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잃어버리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과정을 즐길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100m 달리기 시합을 하루 앞둔 세 명의 학생이 있습니다. 1번 학생은 달리기를 하면 늘 상위권 순위에 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어차피'라는 단어를 내세우면서 내일도 뻔하다는 결론을 혼자서 내리고 또 순위권에 이름을 못 올립니다. 2번 학생은 악착같은 승부근성을 갖고 있어, '반드시' 내일도 3등안에 들어야한다고 각오를 다집니다. 목표는 이뤘지만 시합전날 긴장감때문에 잠을 잘 못자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시합만 한다고 하면 매번 지치고 힘이 듭니다. 3번 학생도 늘 1~2등을 합니다. 그러나 그냥 달립니다. 달리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시합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들뜹니다. 연습하는 것도 너무 신납니다. 입상 목표는 머릿속에 두질 않습니다. 즐겁게 달린 결과가 늘 좋은 것일 뿐입니다.

 빨라야한다는 강박감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부작용도 생깁니다. 속도가 늘 생명과 같은 것인데, 잠시라도 생각하는 시간은 애초부터 없는 것입니다. 창의력이 함께 사라지고 문제 해결 능력도 못 갖춥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학습량이 목표인 것입니다. 몇 페이지를 봤다는 데에 만족하고, 몇 개를 이해했다는 것에는 초점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특정 결과를 목표로 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 아닙니다. 목표를 이미지화 하면 의지를 생기게 하고 추진력도 만듭니다. 하지만 목표에 집착을 갖는 것과는 다릅니다. 집착하는 순간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덮치면서 목표로 한 이미지도 강박감속에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결과에만 의미를 두는 것은 자충수입니다.

 목표를 달성 못해도 과정을 즐겼다면 그것으로 남는 것입니다 . 기회는 또 오는 법입니다. 한 발 차이로 기차를 놓쳤더라도 다음 기차를 타기 위해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과정이 즐거우면 좋은 결과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즐거움은 몰입과 함께 존재합니다. 몰입은 이해력을 높일뿐만 아니라 과정을 충실하게 진행시킵니다.

 대학생때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무조건 대청봉까지 간다'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두고 등산을 했습니다. 대청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역시 정상이 주는 선물은 대단해'라며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놓친 게 있었습니다. 대청봉까지 가는 길의 풍경은 하나도 머릿속에 넣질 못한 것입니다. 그 풍경까지 즐기면서 가도 대청봉이 주는 풍경도 볼 수가 있었는데도 말이죠.

 우리 몸속에 저장된 '빠름'을 지울 때입니다. 생각하면서 즐기면서 가면 빠름보다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100m는 1m부터 그냥 즐겁게 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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