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 네버엔딩스토리
친구의 시골집은 찬바람이 불기시작하는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인기 아지트입니다. 대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는 어릴적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시골집을 종종 찾아갑니다. 시간이 흘러 집앞의 풍경도 바뀌었습니다. 가을이면 고추장 색깔의 대추가 나무 가득 맺혔던 밭에는 대추나무가 세월의 바람에 사라지고 다른 농작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대추밭 바로 뒤에는 친구들의 겨울철 아지트인 별채가 있습니다. 본채는 기름 보일러로 난방을 바꾼지 오래됐지만, 이곳 아궁이 방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넓은 대추나무밭에서 잘려진 나무들이 꽤 오랫동안 땔감으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냉기가 매서운 아궁이 방은 장작 불을 붙이기 시작한지 몇시간이 지나면 미지근한 온기가 방바닥에서 느껴지고 이내 뜨거운 열기가 속도를 높여 올라옵니다.
시골집은 외딴곳에 있어 겨울바람막이가 없습니다. 멀리서 강하게 불어오는 찬바람이 그대로 집으로 거리낌없이 몰려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이 바람때문에 늘 조심하지만, 이 바람때문에 장작은 활활 타오르기도 합니다.
방이 데워지면 친구들은 깔아놓은 이불위에 누워 장작불의 열기에 피로감을 씻어내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장작을 더 넣기위해 아궁이로 가면 한동안 그 앞에 앉아있습니다. 불멍타임입니다. 타닥타닥 소리내며 장작은 붉은 불과 함께 숯으로 변해갑니다. 아궁이 위에 올려진 가마솥은 하얀 김을 힘차게 내뿜으며 타들어가는 장작에 박자를 맞춥니다.
숯이 더이상 타들어가지 못하는 한계점에 다다르면 회색빛의 그을림이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곳곳으로 휘날립니다. 달고 맛나는 대추를 선사한 대추나무가 숯덩어리로 바뀌면서도 사람들에게 끝까지 도움을 주고 간다는 느낌에 불멍시간에는 그 대추나무의 마침표에 감사함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마침표가 없었습니다. 다타고 남은 숯은 삼겹살을 구워먹는데 투입됩니다. 숯은 다시 타 들어갑니다. 검정색이 하얀 잿가루로 바뀔때까지 헌신합니다. 이번에는 요리의 맛을 도와주면서 마침표를 찍는 듯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마침표는 찍히지 않았습니다.
하얀 그을름과 남아있는 숯덩어리의 양도 꽤 많습니다. 장작을 땔때면 늘 지나칠 정도로 많은 양이 아궁이로 들어갑니다. 자주 가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에 방이 충분히 뜨거워져도 장작을 넣고 또 넣습니다. 이불위에서도 그 열기를 감당못할 정도가 돼서야 장작 투입을 멈춥니다. 이렇게 겨울아지트에서 친구들이 모이면 숯이 아궁이 바닥을 하얗게 높여줍니다.
그런데 매번 장작불을 땔려고 아궁이를 보면, 이전에 태워서 남아 있어야할 숯들이 안보입니다. 사라진 숯가루는 아궁이방 윗쪽에 있는 텃밭에 뿌려진다고 합니다. 텃밭에는 배추와 무 농사를 짓습니다. 마침표를 찍은 듯한 숯은 어느새 배추와 무에 스며들어 초록색으로 다시 변합니다.
끝이라고 생각되어도 끝나지 않는 숯의 네버엔딩스토리입니다. 베어진 대추나무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썩어 땅으로 바로 가겠지만, 숯으로 변하는 순간 마침표는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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